국민의힘 대변인 공식 논평 및 보도자료입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2022. 10. 26.(수) 16:00, 동화경모공원 노태우 대통령 묘역에서 노태우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추도사는 다음과 같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노태우 대통령님께서 서거하신 지 1년이 되었습니다. 산과 들은 푸르지만 우리 마음은 한없이 쓸쓸합니다. 1987년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대선이 산업화를 이룬 대한민국이 민주화의 문턱을 넘어서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통 사람’을 기치로 내걸고 “저 이 사람 노태우 믿어주세요”하시던 어른의 육성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노태우 대통령님의 시대를 정리하자면 ‘6.29 민주화 선언’ ‘북방정책’ ‘주택 200만호 건설’ 이 세 가지 키워드가 먼저 생각납니다.
1987년 우리 사회가 폭발 직전의 위기에서 표류할 때 노태우 대통령님은 국민의 뜻에 순응하고 따르는 ‘6.29 민주화 선언’으로 진정한 용기를 보여 주셨습니다.
87년의 평화적 정권교체로 우리나라는 권위주의 시대를 마감했습니다.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유일한 국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노대통령님은 우리 민족이 세계사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명예혁명’을 성취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뭐래도 노태우 대통령님은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연결하는 험한 세상의 다리였습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고 시대적 요구와 국민의 여망에 순응한 진정한 거인이셨습니다.
노태우 대통령님은 ‘대통령 프로젝트’로 북방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셨습니다.
냉전체제의 해체라는 세계사적 흐름을 간파하고, 시대의 흐름을 슬기롭게 활용하는 지혜를 보여주셨습니다.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 39개국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우리나라 경제의 지평을 동구권까지 넓혔습니다. 미국과 일본 등 서방세계만을 대상으로 했던 반쪽외교의 시대를 마감했던 것입니다.
노태우 대통령님은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갔습니다.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으로 있는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이때 입안하셨습니다.
1991년 오랜 숙원이었던 UN 가입을 성취했습니다. 그해 12월에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여 한민족이 하나 되는 그날까지의 로드맵을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퇴색했지만, 북한이 남북 비핵화공동선언에 서명케 함으로써, 북한 핵 개발에 족쇄를 채우고자 하셨습니다.
저는 대통령님께서 민정당 대표위원 시절 말진 기자로 민정당을 출입했었고, 외무부 출입 기자로서 북방정책을 표명한 원대한 7.7선언을 가슴 벅차게 지켜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노태우 대통령님의 재임 기간 5년을 ‘단군 이래 대한민국의 경제가 가장 좋았던 5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경제는 대통령님의 재임 5년 동안 연평균 8.4%의 성장을 지속했습니다. 취임 초 3,321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퇴임할 때 7,527달러로 두 배 넘게 올랐습니다.
노태우 대통령님의 ‘200만호 주택건설’, 즉 제1기 신도시 건설은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실 노대통령님의 재임 기간은 정치 민주화와 함께 경제 민주화의 ‘거센 물결’을 견디면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권위주의 통치 시절에 억눌려있었던 불만과 요구가 일시에 분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노대통령님은 무던한 인내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균형을 지키면서 묵묵히 경제 번영의 초석을 쌓았습니다.
인천국제공항, KTX 건설은 물론이고 오늘날 우리나라 곳곳을 사통팔달로 이어주는 수많은 도로 건설이 거의 모두가 노태우 정부에서 입안되었거나 시작된 것입니다.
정치인으로서도 노태우 대통령님은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극단적 대결의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야당과 의회주의의 본령인 대화와 타협을 추구했습니다.
91년 지방자치 선거를 통해 30년 동안 맥이 끊겼었던 ‘지방자치의 시대’를 활짝 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통령님은 ‘외유내강’의 전형이셨습니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나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평소 하셨던 말이 생각납니다.
이어령 장관은 자신이 장관으로 모셨던 노태우 대통령님이 ‘참 용기’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말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님은 평생 자신의 좌우명 ‘참고, 용서하고, 기다리자’를 지키면서 ‘참 용기’를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1988년 취임하시면서 민화위를 구성하여 그때까지 ‘5.18 광주사태’로 불리던 광주의 시대적 아픔을 치유하고, 광주시민의 명예 회복을 위해 실천적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몹쓸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당신께서 ‘마음의 빚’으로 안고 있던 것들을 모두 갚기 위해 무진 애를 쓰셨습니다.
어른께서 평생 애창했던 ‘베사메 무쵸’(Kiss me much)의 가사 대로 이제는 대한민국의 역사도 노태우 대통령님의 업적을 보다 따뜻한 눈과 냉철한 가슴으로 제대로 평가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많은 국민들은 노태우 시대가 참 좋았었다고, 대한민국이 전진했던 시대였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습니다. 거인은 떠나셨고 힘겨운 삶은 오로지 우리들의 몫입니다. 나라 안팎으로 엄중한 도전과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힘차게 이끄셨던 대한민국, 탄탄한 응전의 태세로 새로운 전진을 준비하겠습니다. 노태우 대통령님 많이 그립습니다. 대통령님의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두 손 모아 빌겠습니다.
2022. 10. 26.
국민의힘 공보실